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비아 드루실라 (문단 편집) === 결혼과 이혼, 재혼 === 리비우스 클라우디아누스는 법무관 경력 외에는 당선되지 못했고, 총독에 오르지 못한 일반 원로원 의원이었지만, 꽤나 보수적이면서도 명민한 사람이었다. 그는 법적으로는 리비우스 드루수스 가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클라우디우스 가문 남성, 특히 클라우디우스 가문 내에서도 가장 위세를 떨쳤고 공화정의 상징과도 같았던 풀케르 가문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따라서 여러 부분에서 친가인 클라우디우스 가문과의 연결 고리를 유지하는데 중점을 뒀고, 꾸준히 자신이 입양간 가문과 친가를 합쳐 새로운 강력한 귀족 가문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에 온 힘을 쏟았다. 이런 까닭에 그는 자신의 딸 리비아 드루실라가 결혼 적령기가 되자마자, 자신과는 정치적 견해에서는 차이가 있고 딸과 나이차가 제법 나던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기원전 42년 법무관)|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와 결혼시켰다. 리비아는 첫남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와의 사이에서 2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중 장남은 훗날 로마 제2대 황제가 되는 [[티베리우스]]였으며, 차남은 '[[게르마니쿠스]], [[클라우디우스(황제)|클라우디우스]]의 아버지이자 [[칼리굴라]]의 할아버지'였던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였다. 두 사람은 [[옥타비아누스]]의 명령에 가까운 강요에 따라 이혼했는데, [[기원전 38년]]에 [[옥타비아누스]]와 결혼할 당시에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 번째 아들을 임신 중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